‘환단고기’는 왜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나… 한국 고대사 연구 구조를 묻다

이재명 대통령 발언 이후 다시 떠오른 고대사 사료 검증 논쟁

위서 논쟁 이전에 점검해야 할 ‘검토 불가’라는 학문적 전제

사라진 기록과 남겨진 질문, 한국 고대사 연구의 구조적 한계

 

 

환단고기(안경전 역주) / 상생출판사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고대사 연구와 관련한 질의 과정에서 ‘환빠’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해당 발언은 환단고기가 고대사 연구에서 사료로 검토될 수 있는 문헌인가라는 질문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은 진위 논쟁이 학계 내부에 존재해 왔음을 언급하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번 논쟁은 단순히 한 권의 문헌을 둘러싼 찬반 대립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고대사 연구가 어떤 기준과 전제 위에서 작동해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핵심 쟁점은 환단고기의 진위 여부 이전에, 왜 특정 문헌은 논의의 출발선에도 오르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환단고기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부에서는 민족사 복원의 실마리를 담은 기록으로 평가하는 반면, 주류 학계에서는 위서라는 판단이 오랫동안 전제처럼 작동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결론이 충분한 내용 검증 이전 단계에서 사실상 확정되는 구조에 있다.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은 출처 불명과 검증 불가능성이다. 그러나 환단고기 본문을 살펴보면 다수의 고문헌을 인용하는 형식이 반복된다. 고기, 밀기, 조대기 등 다양한 기록명을 통해 서술 근거를 제시하려는 시도가 확인된다. 배달유기, 삼성밀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등 다수의 문헌명이 등장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지점이 있다. 문헌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과, 문헌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판단은 동일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특정 시기 고서 수거를 지시한 기록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목록에는 삼성밀기, 표훈천사, 조대기 등 환단고기에 언급된 문헌들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해당 기록들이 최소한 조선조까지는 실재 문헌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환단고기 _ 단군세기 내용 中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사 편찬 과정에서 규장각 장악과 사료 이관, 선별·정리 작업이 진행됐다는 점은 학계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어떤 기록이 어떤 경로로 남고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체계적인 전수 조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고대사 연구 구조는 ‘현존하지 않으므로 검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반복해 왔다. 이는 방법론적으로는 간명하지만, 한국 고대사 사료가 소실된 역사적 맥락을 동시에 배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그 결과 한국 고대사는 여전히 주변국 기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정점에 놓여 있다. 이 문헌은 방대한 서술과 기존 고대사 서술의 출발점을 재검토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학계에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논쟁의 확장이 경계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구조적 긴장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학문은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사료 부족이 문제라면, 소실의 원인과 연구 방법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검토 가능성 자체를 연구 대상에서 배제하는 순간, 역사학은 스스로 탐구의 지평을 제한하게 된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사회적 질문은 이미 존재한다. 이를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응답을 미루는 사이, 고대사의 공백은 더욱 확대될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존의 전제를 점검하고, 자주적 연구 구조를 모색하려는 성찰이다.

 

 

 


 

작성 2025.12.28 19:45 수정 2025.12.2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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